평면이 입체가 되는 (변화에 대한) 방정식
오미경 개인전 '입는 풍경: 땅•집•옷 - 머물다 벗고, 벗었다가 입어 머물고', 아트스페이스 이색
제주에서 나고 자란 오미경은 오랜 육지 생활을 접고 7년 전 귀향했다. 돌아온 제주 농가에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손길이 곳곳에 남아 있을 뿐 아니라 3~400살 먹은 팽나무와 동백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2017년 처음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입구에서 나를 맞아준 고목의 기운을 잊을 수 없다. 몇 년 후,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았던 그 고목은 큰 태풍에 쓰러져 버렸고, 이 상실된 풍경은 이제는 보기 드문 또 다른 풍경(여름이면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팽나무 아래에서 담소를 나눴던 장면)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팽나무 아래 담소>는 그렇게 상실되어 간 팽나무의 기능이 아직 작동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귀한 사진을 패턴화해 프린트한 원단으로 제작한 시원한 여름 반소매 셔츠다.
오미경의 <입는 풍경: 땅•집•옷 - 머물다 벗고, 벗었다가 입어 머물고>는 명리학(사주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을 독학하며 2021년 시작한 ‘오행 걷기 프로젝트’와 이듬해 개최한 개인전 <아침산책, 오행의 풍경>에서 선보인 사진 작업 중 ‘땅’에 대한 이야기를 선별해 발전시킨 15점의 신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다녔던 길을 지난 3년간 매일 산책했다. 익숙한 동네, 같은 길을 매일 오고 가며 무엇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까 싶지만, 반복 속에서 작가는 떠나간 사람, 허물어진 집, 달라진 농촌 풍경을 곱씹으며 ‘변화에 대한 방정식’을 풀기 시작한다.
1층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맨 처음의 옷>이라는 작품은 유일하게 프린트 없는 흰 무명원단으로 지은 고운 배냇저고리와 검은 비닐로 덮인 농지를 패턴화해 프린트한 배경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농촌에서는 흔한 풍경인 ‘비닐로 덮인 땅’은 오늘의 시대상이 아닐까? 어렸을 적 새벽부터 밭에 나가 김을 매던 어머니들과 봄이 되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쑥을 캐 먹던 시절이 엊그제 같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제초제를 뿌려 자취를 감춘 (혹은 오염되어 먹을 수 없는) 쑥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땀 흘리며 비닐로 덮은 ‘깨끗한' 땅뿐이다. 오미경은 돌아온 고향에서 마주한 이 황폐해진 땅 위에 갓난아이가 처음으로 입는 옷인 배냇저고리를 병치했다. 다른 작품들은 대부분 같은 패턴의 원단으로 배경천과 옷을 지어 마치 카멜레온처럼 피아(彼我)의 불가분적 관계를 드러내는 반면, <맨 처음의 옷>은 그 경계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며 우리의 시작점과 끝 지점을 환기한다. 그리고 땅은 바로 그 두 지점의 교차와 평행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무덤(무덤의 형상이 산과 같으며 신성한 곳이라는 이유로 제주에서는 무덤을 ‘산'이라고 부름)은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금은 이장을 위해 많이 파묘되었지만, 제주 사람들은 이런 ‘산'을 집처럼 여겨 돌로 네모난 울타리를 만들고 이를 ‘산담’이라 불렀다. 네모난 집의 지붕 아래 둥근 여성의 배에서 나와 네모난 담으로 둘러싸인 둥근 땅의 흙더미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대지의 모자 • 집 무덤>은 전시장에서 직접 써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흙을 뒤집어쓰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거울에 비친 대지의 모자를 쓴 내 모습을 바라보며 언젠가 흙으로 덮일 내 육신의 죽음을 상상해 본다. 늘 두려웠던 죽음이 꽤나 아름다워 보인다.
작가는 한 장의 풍경을 반사하고 반복함으로써 만든 패턴을 원단에 프린트한 후 옷을 지어 다시 평면적으로 전시했다. 작품은 평면(사진/죽음/과거)과 입체(풍경/삶/현재)의 경계에 머무르는데, 그것은 삶과 예술의 경계를 시사하기도 한다. 근대에서 이어져 온 현대미술 이전의 예술은 그 시대의 철학을 반영하며 의식주(衣食住)를 중심으로 삶 속에 녹아 있었다. 예를 들어 전통 원단에 찍힌 여러 가지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수복(壽福), 강령(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 여러 가지 시대적 염원을 담아냈다. 오미경은 이전 작업과는 다르게 실제로 기능할 수 있는 원단과 옷을 짓고 ‘입는 풍경'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선보였다. 예전과 달라진 풍경을 한 번 더 변형시킨 새로운 풍경을 입는 것은 어떤 염원을 내포하는 것일까?
전시장에서 단연 눈길을 끈 작품은 녹색 치마저고리 한 벌을 담은 <수수밭 동백>이다. 밭 한 가운데 여인이 홀로 묻혀 있는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을 포장할 당시, 작가는 마치 강한 기운을 품은 ‘대지의 여신’을 보자기에 모시고 바다를 건너 올라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옷을 짓는다는 것은 그 옷을 입을 사람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집을 짓는 것이 그 집에 살 사람을 염두에 둔 것처럼 말이다. 즉, 옷과 집은 삶을 전제로 존재한다. 하지만 <수수밭 동백> 치마저고리의 주인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은, 어떤 상실된 인간상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빨간 대문>이라는 작업은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의 대문을 찍은 사진을 패턴화한 원단으로 제작한 저고리다. 예전에는 지붕이 올라가면 집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기고 이를 축원하는 의식(상량제)을 가졌다. 평면(사진/죽음/과거)이 입체(풍경/삶/현재)가 되었을 때를 기리는 의식인 것이다. 하지만 <빨간 대문>의 주인은 집의 생일이 새겨진 상량문만 남기고 떠나버렸고,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의 지붕이 무너지는 순간, 집의 형태는 사라져 버렸다. 이 두 작품은 마치 공동체 없는 신화처럼 끊어진 맥, 혹은 상실을 내포하고 있다.
오미경은 땅, 밭, 담, 문, 집을 지나며 그곳에서 나고, 자라고, 떠났다, 돌아와, 잃어버린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옷은 제2의 살갗이기에 철 지난 옷(제주의 풍경)을 다시 입고 느끼는 불편함을 감내하며 머물다 벗고, 벗었다가 다시 입어 머물러 본다. 옛사람, 옛집, 옛정서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집, 새로운 정서와 교차시킨다. 소외된 풍경의 반복을 통해 평범하게만 느껴졌던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도 내 몸을 옷에 맞춰본다. 결국 평면이 입체가 되는 변화에 대한 방정식이란 그렇게 땅을 짓고 집을 짓고 옷을 짓는 것처럼 평면적 예술이 예측할 수 없는 일상으로 회귀하여 다시 기능하고 기운생동(氣韻生動)함을 의미한다. “작품과 전시를 생기있게 하는 작업의 완성, 최종 창작자는 의상을 착용하고 바느질을 하는 관람자가 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과 예술의 경계에 있는 오미경의 작품은 현대미술 담론에 경종을 울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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